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.
해가 뜰 때가 있고 해가 질 때가 있다.
꽃이 필 때가 있고 꽃이 질 때가 있으며
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.
역사에서도 문명이 흥성할 때가 있고
쇠망할 때가 있다.
또
인간사에서 사업을 벌일 때가 있고
거둘 때가 있고
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가 있다.
적벽대전의 승패를 가른 것도
동남풍이 불어오는 그 한때이다.
하다못해
밥도 먹을 때가 있고
약도 먹어야할 할 때가 있다.
때가 아닐 때 먹으면 몸을 상하고
때를 놓치면 사후약방문이 되고 만다.
![공부할 때...(時)](http://tv01.search.naver.net/ugc?t=252x448&q=http://cafefiles.naver.net/20100708_15/yam0922_12785659580072Jz7y_jpg/006_%282%29_yam0922.jpg)
자식에 말 한마디를 해도 그렇다.
‘공부 열심히 하라’는
한 마디 말을 해도 때가 있다.
시도 때도 없이 공부하라는 소리를 하면
잔소리 밖에 안된다.
그렇게
만사에는 때가 있다.
때가 이르지 않았는데
설치면 튀는 것 밖에 안되고
때가 당도했는데 결행하지 못하면
영원한 패배자가 된다.
강태공은 10년 동안 기다렸다.
때가 오기를 기다렸다.
자기 시절이 올 때까지는
태산처럼 움직이지 않았다.
도쿠가와는
승리의 순간을 목전에 두고서도
히데요시가 죽는 그날까지 결코 칼을 뽑지 않았다.
은인자중 자기의 시절을 기다렸다.
그렇게 때를 기다렸다.
때를 알았기 때문에,
아직은
자기의 시절이 아닌 줄 알았기 때문에
기다릴 수 있었다.
그래서 역사는
때를 낚아채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.
그런가하면
나폴레옹은 물러날 때를 놓치면서
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당한다.
승리감에 도취해서 모스코바까지 진격했지만
그것이
사지(死地)로 빠져드는 길인 줄 몰랐다.
겨울이 오는 줄을 몰랐고
철수를 결정했을 때 이미 때를 놓쳤다.
![顧客雲集 의 때(時)는](http://tv01.search.naver.net/ugc?t=252x448&q=http://blogfiles.naver.net/20120924_296/june4499_134844962306035RKl_JPEG/DSC07097.JPG)
조선의 철인(哲人) 이퇴계 선생은
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가 정확했다는 점에서도
후세의 귀감이 된다.
그렇다면
때를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?
옛 사람들은 천시(天時)라고 했고
그렇게 ‘때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.
또
천시라는 것을 신비화시키기도 했다.
역술이나 천문에
밝은 도인(道人)들이 아니고서는
천시를 알 수 없는 것처럼,
그렇게 신비화시키기도 했다.
그러나
때라는 것,
천시라는 것,
그렇게 신비화시킬 것은 아니다.
때를 안다는 것은,
언제 운수가 좋으냐 나쁘냐를 안다는
그런 이야기가 아니다.
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
해야 할 일이 무언지를 안다는 것이다.
달리 말하면,
시간의 이치에 합당하게
자신을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.
내가 서 있는 자리,
나의 삶의 현장에서 있어야할
정확한 모습으로 위치하고 있는 것,
내가
어느 자리에 어떻게 있는가에 따라서
할 것을 정확하게 하고 있으면
때를 안다고 한다.
그러니까
때를 안다는 것,
운수에 자신을 맡기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.
자신의 욕심을 실현할
운수를 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.
전혀
그런 이야기가 아니다.
![때(時)-섭리(攝理)](http://tv02.search.naver.net/ugc?t=252x448&q=http://blogfiles.naver.net/20110719_84/jsw3765jd_1311034219188WJhRd_JPEG/%C6%F7%B8%CB%BA%AF%C8%AF_%BC%F6%C8%AE.jpg)
시도 때도 없이 무성하게 일어나는
욕심에 무슨 때가 필요하겠는가?
그러니까
살아도 사는 뜻이 없고
그 뜻에 합당한 일,
할 일이 없는 사람에게는
때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.
할 일이 분명히 있고
해야할 일을 순리적으로 하고 있을 때,
때라는 개념이 성립한다.
‘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?’
이 또한 중요한 화두이지만
시간의 이치와 자신의 행위를
일치시켜 갈 수 있다면 결코 풀릴 수 없는 화두다.
시간의 이치와 자신을
일치시켜가고 있다는 것,
다른 이야기가 아니다.
소박하게 말하면
마음이 콩 밭에 가 있지 않고
잿밥에 눈이 어둡지 않고
오로지
염불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.
흔히
‘때를 기다린다’고 한다.
기다린다는 것,
막연히 허송세월하면서
호시절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.
그 때를 준비하고 있는 것,
그것을 기다림이라고 한다.
그래서
역사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라고 한다.
준비라는 것도 그렇다.
언제 어느 때든
그 자리에 있어야할 모습으로
그 자리를 정확하게 지키고 있는 것,
그 이상의 준비는 없다.
배영순(영남대 국사과교수)